로딩 화면을 대신하는 것은 관리동 던전 입구의 형광등이었다.
한 번 꺼졌다 켜질 때마다, 철제 출입문 위의 균열 표지가 잠깐씩 물에 잠긴 글자처럼 흔들렸다. 서이레는 휴대폰을 세로로 세운 뒤 화면을 두 번 두드렸다. 중고 삼각대가 가볍게 삐걱거렸다.
라이브 시작.
시청자 수 3.
닉네임 셋이 채팅창에 떠 있는 동안에도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이레는 화면 속 자신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카메라를 조금 높였다. 사고 뒤 거울을 볼 때마다 느끼던 낯섦은, 사람에게 보여 주려 하니 더 선명해졌다. 그래도 이 얼굴로는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아침에 균열관리국 접수 창구에서 들은 말은 간단했다. 개인이 정리한 길 안내는 공략 데이터가 아니고, 공략 데이터가 아니라면 매입할 이유도 없다는 말. 이레가 예전처럼 글로 써 둔 메모도 마찬가지였다. 길드가 가진 표와 이름이 없으면, 맞는 정보도 누군가의 추측 취급을 받았다.
휴대폰 요금 알림은 며칠째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이레는 그 알림을 끄는 대신 방송 제목을 다시 확인했다.
관리동 던전, 길 잃지 않는 법.
게임 방송처럼 보이면 어떻고, 실사 콘텐츠처럼 보이면 또 어떤가. 누군가가 실제로 들어갈 길을 알아듣기만 하면 됐다.
"안녕하세요. 레이입니다. 오늘은 관리동 던전 B등급 구간을 안 들어가고 빠지는 길을 보겠습니다."
목소리가 너무 또렷하게 녹음됐다. 이레는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먼저 따라 하실 분은 현장 허가와 장비 있는 분만요. 화면 보고 혼자 들어가지는 마세요."
파란말풍선: 공포겜인데 안전고지까지 해 주네 절벽콩: 컨셉 디테일 미쳤다
"컨셉 아니고요. 길을 몰라서 다치면, 그다음에는 누가 맞는 말을 해도 안 들으니까요."
이레는 말하고 나서야 카메라에 대고 너무 많은 것을 말했음을 알았다. 화면 오른쪽에 숫자 하나가 늘었다. 시청자 수 4.
철문 옆의 소라가 웃음도 없이 물었다.
"방송으로 길 알려 주는 사람이 제일 위험한 말도 하네요."
"위험한 길을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낫죠."
"그럼 하나만 더. 여기에서 길을 틀리면 어떻게 돼요?"
이레는 안내판 쪽을 봤다. 흰 글자가 정면 통로 위에서 조용히 떨렸다.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확인할 건 탈출로 하나예요. 몬스터 잡는 방법도, 보상방 찾는 방법도 아닙니다. 나가는 길만 봅니다."
"돈은 안 되겠네요."
"살아서 다음 방송을 켜면 됩니다."
소라는 그제야 입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채팅이 한 줄 올라왔다.
절벽콩: 실사 맵인가요?
이레는 답하지 않았다. 출입문 안쪽의 안내판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 검은 글자 위로 얇은 흰 글자가 겹쳤기 때문이다.
[정면 통로 / 위험: 발걸음을 세는 바닥]
[왼쪽 계단 / 선택지: 켜진 방 하나를 지나갈 것]
태그는 던전 안에서만 보였다. 사고 뒤로 몇 번이나 확인했다.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도,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켜도, 이레가 읽는 글자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 태그를 봤던 날에도 글자는 짧았다. 위험과 선택지뿐이었다. 그 짧은 문장을 정답처럼 믿고 움직였다가, 필요한 장비를 안 챙긴 대가로 출구 앞에서 한참을 돌아야 했다. 태그는 길을 알려 주지만 대신 걸어 주지 않는다. 이레는 그 뒤로 태그 아래에 자기 판단을 한 줄씩 덧붙이는 버릇이 생겼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정면이 위험하다는 것과 왼쪽이 안전하다는 것은 다른 말이었다.
"첫 번째. 정면으로 가지 마세요. 바닥 타일에 발자국이 남는 구간이 있습니다. 둘째. 왼쪽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중간에 불 켜진 방이 있어도 문턱을 넘지 마세요."
철문 옆에서 장갑을 조이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짧은 머리와 회색 보호 조끼. 이레가 들어오기 전부터 출입 허가증을 확인하고 있던 D급 헌터였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카메라가 여자 쪽으로 조금 흔들렸다. 이레는 삼각대를 붙잡았다.
"안다고 하면 따라오실 겁니까?"
여자는 입꼬리만 움직였다.
"그래서 제가 뭘 하면 돼요?"
정소라. 출입 기록표에 적힌 이름을 이레는 이미 봤다. 허가 인원은 소라 하나였다. 길드 소속도, 안내 인력도 없었다.
"계단으로 올라가다가 불 켜진 방이 나오면, 제가 멈추라고 할 때 멈춰 주세요. 뛰지는 말고요."
"그게 공략이에요?"
"지금은요."
소라는 한 번 더 이레의 휴대폰을 봤다. 채팅창에는 물음표가 늘고 있었다.
파란말풍선: 와 현직 헌터 섭외까지 했네 절벽콩: 바닥 타일 밟으면 몹 젠되는 연출 같은데
소라는 허가증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정소라예요. 길 잃으면 방송 끄고 제 말 들으세요."
"서이레. 방송은 안 끕니다."
"그럼 길은 안 잃게 말해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소라는 문을 밀었다.
――
안쪽은 예상보다 조용했다. 관리동 던전은 원래 낡은 공공청사 복도를 닮아 있었다. 벽에는 없는 부서의 표지판이 붙어 있고, 바닥에는 누군가 오래전부터 닦아 낸 발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이레는 현관 타일이 아닌 벽 쪽 고무 몰딩을 밟아 왼쪽 계단으로 향했다.
소라는 한 계단 뒤에서 따라왔다.
"정면은 왜 안 돼요?"
"밟은 발걸음을 세는 바닥이래요."
"바닥이 세면요?"
"모르니까 안 가는 겁니다."
"공략 방송은 보통 그걸 알아내러 가는 거 아닌가요?"
"보통은 그렇죠. 그런데 오늘은 제가 혼자고, 소라는 제 말을 믿는지부터 확인 중이잖아요."
"아직 안 믿어요."
"그럼 더더욱 들어가면 안 됩니다. 안 믿는 사람을 데리고 위험을 확인하는 건 공략이 아니라 실험이니까요."
소라는 계단 난간을 한 번 쥐었다 놓았다.
"말은 그럴듯하네요."
"말이 아니라 발로 확인해 주세요."
소라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발을 돌리지는 않았다.
계단 중간에 불 켜진 사무실이 나왔다. 유리문 너머 책상 하나와 탁상시계 하나가 놓여 있었다. 사람은 없는데, 의자만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사무실 203 / 비용: 대답한 목소리 하나]
유리문 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소라의 손이 자동으로 무전기 쪽으로 갔다. 이레는 팔을 뻗어 소라의 손목을 잡았다.
"받지 마요."
"안 받았어요."
"대답도 하지 마세요."
전화벨이 세 번 더 울렸다. 그러다 유리문 반대편에서 누군가 낮게 말했다.
"정소라 씨, 확인 부탁드립니다."
소라의 어깨가 굳었다. 이레는 손을 놓지 않았다. 채팅창은 화면 속 자막을 칭찬하고 있었다.
파란말풍선: 성우 톤 좋다 절벽콩: 이거 방 들어가면 퀘스트 시작이죠? ㅋㅋ
"보지 말고 올라가요."
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계단을 끝까지 올랐다. 전화벨은 문 하나를 지나서야 끊겼다.
계단참을 돌아선 뒤에야 소라가 낮게 물었다.
"방금 제 이름, 어떻게 알았어요?"
"전화가 불렀잖아요."
"그 전에요."
이레는 잠깐 멈췄다. 출입 기록표를 봤다고 말하는 건 쉬웠다. 태그를 봤다고 말하면, 이 방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설명해야 했다.
"입구 기록표요. 혼자 들어오셨길래요."
"혼자면 안 됩니까?"
"안 된다고 한 적 없어요. 다만 다음부터는 누군가랑 오세요."
소라는 비웃듯 숨을 내쉬었다.
"그 말 하려고 방송 켠 건 아니죠."
"아니요. 그 말 들으려고 켰어요. 누군가가 같이 들어가게 만들려고."
채팅창에 짧은 반응이 몇 개 올라왔다.
파란말풍선: 대사 자연스럽다 절벽콩: 저 헌터분 연기 아닌 것 같은데요
이레는 그 두 줄을 읽고도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
2층 복도 끝에는 비상구 표지판이 있었다. 화살표는 왼쪽을 가리켰지만, 태그는 그 아래 다른 문장을 띄웠다.
[왼쪽 비상구 / 위험: 닫힌 뒤에는 같은 사람만 열린다]
이레는 입술을 다물었다. 왼쪽도 아니었다. 정면은 발걸음, 왼쪽은 사람을 가르는 문. 남은 것은 벽 쪽의 낡은 부서 안내판뿐이었다. 안내판에는 "시설관리과"라고 적혀 있었고, 그 밑에는 잠긴 회색문이 붙어 있었다.
아무 태그도 없었다.
이레가 펜 끝으로 안내판 모서리를 두드렸다. 태그가 없다는 건 안전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읽을 수 없는 자리는 선택지에서조차 빠져 있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끝인가요?" 소라가 물었다.
"아니요. 돌아갈지, 저 문을 열 방법을 찾을지 둘 중 하나예요."
"공략 방송인데 선택지를 시청자한테 던져요?"
"제가 모르는 걸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없으면요?"
"그때는 돌아갑니다. 모르는 길을 아는 척해서는 다음에도 못 들어오니까요."
이레는 카메라를 회색문으로 돌렸다. 처음으로 숨기지 않고 말했다.
"이 문 아는 사람 있으면 말해 주세요. 추측 말고, 실제로 본 것만요."
잠깐 조용했던 채팅창에 긴 글 하나가 올라왔다.
절벽콩: 예전 관리동은 시설관리과 간판 뒤에 출입문 하나 더 있었어요. 간판 자체가 덮개라서 옆 나사 풀면 밀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