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피아
내 서재

내 공략 방송을 다들 게임 컨셉으로 안다

03. 진짜 길 찾기

무료 공개3 / 6화
가독성

한세진의 글은 제목부터 과했다.

관리동 던전에서 진짜 길 찾는 방송을 봤습니다.

이레는 침대 끝에 앉아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글 아래에는 철망문이 열리는 영상 일부와, 관리국 구조 접수 화면을 찍은 사진이 붙어 있었다. 구조대는 세진의 두 동료를 정면 계단 반대편 보관실에서 데리고 나왔다. 크게 다친 사람도 없다. 그 소식에 안도하고 나서야, 이레는 제목이 주는 무게를 느꼈다.

댓글 알림은 계속 울렸지만, 이레는 바로 화면을 내리지 못했다.

진짜 길 찾기.

댓글은 반으로 갈려 있었다. 제작진이 관리국까지 섭외했다는 사람과, 저걸 믿고 들어가면 죽는다는 사람이 같은 속도로 글을 썼다. 어느 쪽도 이레가 원한 대답은 아니었다.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방송 플랫폼의 정산 알림이었다.

후원금 지급 예정 18,400원.

이레는 숫자를 본 뒤에도 한동안 화면을 끄지 못했다. 예전에는 공략글 하나를 며칠씩 고쳐도, 조회수는 다음 주에나 움직였다. 어제의 서툰 방송은 한 사람을 꺼내고, 열아홉 명을 붙잡고, 돈까지 남겼다. 그 과정이 너무 빠르다는 사실이 오히려 불안했다.

정산 내역을 누르자 후원 메시지들이 줄줄이 펼쳐졌다. "문 닫히는 장면 좋았다", "다음은 보스전인가요", "헌터분 이름 뭐예요". 세진이 남긴 긴 글 사이에 짧은 농담들이 끼어 있었다. 누구도 이레가 적어 둔 선택지를 읽으려 하지 않는 것 같다가도, 절벽콩은 통로의 나사 위치를 정확하게 썼다. 어느 쪽이든 화면 바깥의 사람들은 방송을 보고 움직였다.

이레는 메모장을 열었다.

첫째, 태그가 보여도 확정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둘째, 현장에 있는 사람이 할 일을 먼저 확인한다. 셋째, 선택을 하면 잃는 것도 같이 말한다.

세 줄을 적은 뒤에도 손이 멈추지 않았다. 넷째에는 무엇을 적어야 할지 몰랐다. 방송을 켠 사람이 책임질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이레 자신도 아직 몰랐다.

"얼굴도 켤 거예요?"

문자 통화 화면에서 소라가 물었다.

"왜요?"

"커뮤니티에 모델 썼다는 말이 많아서요. 목소리만 내보내면 다음에는 던전도 세트라고 할걸요."

"얼굴을 켜면 진짜가 됩니까?"

"아니요. 적어도 본인이 앞에 있다는 건 보이죠."

"소라는 왜 카메라에 안 나와요?"

"저는 헌터지, 방송인이 아니니까요."

"어제는 같이 들어갔잖아요."

"그건 제가 들어간 거고, 당신이 켠 방송에 제가 찍힌 거죠. 둘은 달라요."

이레는 그 말을 되짚었다.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은 단순히 얼굴을 보여 주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레이라는 이름 아래에 기획자, 연출가, 사기꾼, 현직 헌터 중 하나를 붙이려고 할 것이다. 이레가 직접 자기 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가장 시끄러운 사람이 대신 결정할 터였다.

"그래도 오늘만은 화면 안에 있어 줘요. 계약 얘기라면 현장에 갈 사람도 알아야 하니까."

통화 너머에서 옷걸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카페까지만이에요. 방송은 당신 몫."

이레는 통화를 끊고 거울을 봤다. 낯선 얼굴은 아직도 사고 이전의 자신과 닮은 점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방송을 켤 사람은 이전의 서이레가 아니라 레이였다.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누군가가 대신 이름을 붙여 줄 것이다.

이레는 조명을 켰다.

――

방송 시작 버튼을 눌렀다.

시청자 수 127.

숫자가 세 자리가 된 것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채팅의 속도였다. 이레는 화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도 카메라를 피하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한쪽 귀 뒤로 넘긴 다음, 볼펜을 책상 위에 똑바로 놓았다.

"어제 관리동 던전 방송을 한 레이입니다. 영상은 편집하지 않았고, 구조 상황은 관리국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파란말풍선: 와 버튜버가 진짜 얼굴도 까네 절벽콩: 얼굴 공개 이벤트가 아니라 설명부터 하네 한세진: 친구들도 나왔습니다. 구조대 감사해요

"다만 이 방송은 공략을 보증하지 않습니다. 따라 하라는 뜻도 아니고요. 어제 통로는 닫혔습니다. 같은 길을 다시 찾을 수 없어요."

채팅창이 잠깐 느려졌다.

파란말풍선: 아니 그러면 어제 영상 왜 올림?

"멈출 자리를 보라고요. 길을 안다고 해서 들어가도 된다는 뜻은 아니니까."

이레는 어제 소라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기지 않으려고 문장을 고쳤다. 기록은 누군가를 떠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이미 들어갔을 때 혼자 판단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 그 차이를 설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길었다.

절벽콩: 관리동 시설 통로는 예전에 비상 점검용이었어요. 문이 닫힌 건 이상한데, 간판 뒤 구조 자체는 맞습니다. 파란말풍선: 제작진 설정 짜는 속도 뭐임

이레는 웃지 않았다. 웃으면 이 대화가 전부 장난으로 굳을 것 같았다.

"오늘은 던전에 안 들어갑니다. 대신 어제 방송에서 제가 틀린 부분을 말할게요. 철망문을 열고 나서, 통로가 닫힌다는 걸 미리 말하지 못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선택의 비용까지 같이 말하겠습니다."

그때 후원 알림이 화면 위로 튀었다.

[바닥수리님이 1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다음 맵은 하이드랑 합방인가요?]

이레는 낯선 닉네임을 읽고 고개를 기울였다. 후원 메시지 아래에 새 메일 알림이 겹쳤다. 발신자는 하이드 길드 공략팀.

메일은 지나치게 예의 바른 문장으로 시작했다. 어제의 안전한 대응에 감탄했다는 인사, 신인 방송인의 성장을 돕고 싶다는 제안, 그리고 비공개 미팅 시간. 마지막 줄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백도현 공략팀장.

"하이드에서 연락 왔어요." 이레가 말했다.

채팅은 곧장 환호처럼 들끓었다.

파란말풍선: 대형 길드 스폰서 루트다 절벽콩: 계약서는 꼭 읽고요

이레는 화면을 보며 천천히 답했다.

"읽고 결정하겠습니다. 방송을 끄라는 계약이면, 안 합니다."

――

방송을 끈 뒤, 이레는 하이드가 보낸 메일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검증'이라는 단어가 다섯 번 나왔다. '책임'은 세 번, '독점'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최초 공개권', '사전 공유', '브랜드 신뢰' 같은 말들이 문단마다 자리를 바꿔 앉아 있었다.

메일에는 미팅 전 비밀유지 동의서도 붙어 있었다. 이레는 서명란까지 내린 뒤 파일을 닫았다. 계약 내용을 세상에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부터 하는 건, 길을 알려 주는 방송과 맞지 않았다.

소라는 카페 출입문 앞에서 휴대폰을 흔들며 이레를 기다렸다.

"저쪽에서 또 보냈어요. 동행 헌터는 길드가 지정한 사람만 가능하대요."

"아직 계약도 안 했는데요?"

"그러니까 빨리 자기들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는 거겠죠. 들어가서 말은 제가 할게요."

"소라가 계약 얘기를 왜 해요?"

"제가 던전에서 누구 말 듣고 움직일지 정해야 하니까요. 그건 현장 얘기예요."

이레는 소라가 먼저 유리문을 여는 모습을 보며, 오늘만큼은 혼자 방송을 켜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

약속 장소는 하이드 길드 건물 안이 아니라 근처 카페였다. 이레는 소라에게도 와 달라고 했다. 소라는 작업복 위에 얇은 재킷만 걸친 채, 계약서 출력본을 먼저 받아 들었다.

백도현은 이레가 앉기 전에 명함을 내밀었다. 말끔한 셔츠와 낮은 목소리가 관리동 던전의 눅눅한 공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레이 님 방송은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위험을 과장하지 않는 태도가요. 신입 헌터에게 필요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한테 뭘 제안하시는데요?"

"검증된 정보를 더 좋은 환경에서 제공하자는 제안입니다. 하이드가 현장 인력과 장비를 지원하고, 레이 님은 최초 공개 권한을 저희에게 주시면 됩니다."

소라가 계약서 첫 장을 넘겼다.

"최초 공개가 아니라 독점 사용권이네요. 레이가 다른 사람한테 위험 구간 말하는 것도 막고."

백도현은 웃는 얼굴을 바꾸지 않았다.

"안전 정보는 확인 절차가 중요합니다. 검증되지 않은 방송이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어제 구조된 사람은 길드 공략 보고서보다 빨리 나왔는데요."

"그 점을 높이 평가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을 함께 지자는 뜻이지요."

이레는 계약서의 조항을 내려다봤다. 방송 장비 지원, 월 고정 후원, 현장 동행. 듣기 좋은 단어 사이에 자료 귀속과 사전 승인 문구가 숨어 있었다. 관리동에서 발견한 길을 말하려면, 다음부터는 누군가의 허락을 기다려야 했다.

"제가 거절하면요?"

"계속 방송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시청자분들이 현실과 연출을 구분하기 어려워할 수 있겠지요. 저희는 그 위험을 줄일 방법을 갖고 있습니다."

소라는 서명란이 있는 마지막 장을 접었다.

"그 방법이 입 막는 거면 필요 없어요."

"정소라 헌터님은 계약 당사자가 아니십니다."

"현장에 들어가는 건 저예요. 레이가 말한 길을 누가 밟는지도 제가 봅니다."

소라는 계약서를 이레 쪽으로 밀어 주었다. 이레가 아무 말 없이 보고 있자, 소라는 서명란을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리고 종이를 반으로 찢었다.